벌써 1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용한 장비입니다. 사진에 있는 접안렌즈는 중학교 시절 구입한 보그 76mm 아크로매틱 굴절 망원경에 기본 세트로 포함되어 있는 접안렌즈입니다. 3개의 접안렌즈와 1개의 2.2배 확대렌즈(Barlow Lens)인데요, 모두 작고 가볍고, 디자인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입니다. 이 접안렌즈들은 처음 망원경을 마련한 이후로 지금까지 주된 관측장비로 쓰고 있는데요, 지금까지의 느낌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3개의 접안렌즈는 이렇습니다. H 50mm, SWK 22mm, WO13.5mm. 렌즈 구조는 이렇다는군요. 세 가지 렌즈 모두 눈과 닿는 쪽은 5mm 정도 높이의 고무로 주위의 잡광을 막아줄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안경을 쓸 때는 이 부분은 접어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필터를 끼울 수 있는 나사산은 셋 모두 없으므로 직접 나사산을 파지 않는 한, 접안렌즈용 필터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1. H 50mm
이 접안렌즈는 보그 76mm 망원경에 끼워쓰면 배율 10배에 시야는 4.5도가 나오는 저배율 접안렌즈입니다. 망원경 기본세트에 파인더 망원경이 없고, 따로 설치를 할 수도 없으므로, 파인더를 대신할 목적으로 포함된 접안렌즈이지요. 사양은 이렇습니다.
접안렌즈 방식: 호이겐스(Huyghens)식
렌즈 구성: 2군 2매
겉보기 시야: 45도
초점거리: 50mm
무게 : 50g
규격: 50.8mm(2")
호이겐스식, 굴절망원경 초기에 발명된, 아주 고전적인 방식입니다. 저렴한 렌즈답게 렌즈 두 장 가운데 눈 쪽에 있는 렌즈만 멀티코팅이 되어있는 것 같고, 대물렌즈 쪽에 있는 커다란 필드렌즈에는 코팅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추정컨데, 접안렌즈 자체의 빛 투과율은 91% 정도 될 것입니다. 성능은 크게 나무랄 부분은 없습니다. 연결부가 50.8mm인 접안렌즈라 렌즈가 크고 시원해 보입니다. 실제로도 겉보기 시야가 45도로 제대로 나오고, 저배율이라 수차도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시야 외곽으로 가면 상이 약간 흐려지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아이릴리프는 호이겐스식이라는 특성상 길지는 않지만, 유효초점거리가 50mm에 이르는 렌즈인지라 안경을 써도 딱히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아이릴리프는 15mm 내외가 아닐까 합니다). 기본으로 포함된 3개의 접안렌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접안렌즈입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1cm의 눈금이 그려져있지만, 크게 쓸모가 있지는 않습니다.
2. SWK 22mm
초점거리 22mm로 중간 정도 배율을 내는 접안렌즈입니다. 보그 76mm 망원경에 끼우면 23배 정도 되지요. 사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배율인데, 이 접안렌즈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사양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접안렌즈 방식: 광시야 케르너(Super-Wide Kellner)식
렌즈 구성: 3군 4매
겉보기 시야: 70도
초점거리: 22mm
무게 : 40g
규격: 31.7mm(1.25")
광시야 케르너 방식으로, 호이겐스식에 비하면 좋은 방식입니다. 렌즈의 구조는 일반적인 케르너식 접안렌즈 앞에 필드렌즈를 덧댄 모습이고, 코팅은 H 50처럼 필드 렌즈 쪽은 코팅 처리가 되어 있지 않고 나머지 렌즈는 멀티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투과율은 90% 정도로 추정됩니다.
일단 사양만 보면 괜찮아 보입니다(코팅을 제외한다면). 색지움렌즈를 포함하고 있어 색수차가 적을 것 같고, 시야가 무려 70도가 나옵니다. 광활한 시야로, 고급 접안렌즈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시야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굉장히 넓은 편에 속하죠. 광학적 성능도 크게 나쁜 편은 아닙니다. 시야 중심에서 60% 정도부터 별이 퍼지기 시작해서 80% 정도면 비점수차가 심해지긴 하지만 워낙 시야가 넓은 접안렌즈이므로 이해할만 합니다.
그런데 왜 안 썼을까요? 이렇게 좋은 렌즈를...
이유는 극히 짧은 아이릴리프 때문입니다. 사양표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안경을 쓰면 시야가 극히 좁아집니다. 고급 렌즈가 아니므로 이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경을 벗고 봐도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습니다. 눈을 가까이에 대고 이리저리 살펴보면 시야가 넓은 것은 분명합니다. 확실히 광활합니다. 그런데, 아이릴리프가 너무도 짧아서, 렌즈에 속눈썹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 넓은 시야를 즐길 방법이 없습니다. 잡광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고무후드가 얼굴에 완전히 밀착될 정도가 되어야 간신히 전체 시야를 볼 수 있는 정도지요. 아이릴리프를 실측해보면 3~4mm 정도입니다. 초점거리에 비해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습니다. 접안렌즈에서 멀어지면 아주 빠른 속도로 시야가 줄어들고요(안경을 쓰면 1/4 정도가 됩니다. 20도가 채 안되죠. (후드를 접으면 50% 정도로 넓어지긴 합니다). 문제는 가까이에 눈을 대고 보면 망원경이 흔들려서 제대로 관측을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인데요, 실질적으로 이 넓은 시야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관측이 매우 불편해집니다. 따라서 70도의 시야는 그냥 스펙만 70도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활용할 수는 없어요.
한 가지 문제를 더 지적한다면, 목성처럼 밝은 천체를 관측하면 고스트 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데, 강도가 그리 심하지 않고, 시야에서 밝은 천체의 위치를 조금만 조절해도 쉽게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WO 13.5mm
이 접안렌즈는 기본 37배, 함께 포함된 2.2배 확대렌즈와 결합해서 쓰면 81배, 2개의 연장통까지 쓰면 148배까지 낼 수 있는 고배율용 접안렌즈 입니다. 고배율 관측에 적합한 방식인 오르소스코픽 방식을 채택하였구요. 고급렌즈는 아니지만 광학성능은 가격을 고려했을 때 괜찮은 편입니다.
접안렌즈 방식: 광시야 오르소스코픽(Wide Orthoscopic)식
렌즈 구성: 3군 5매
겉보기 시야: 64도
초점거리: 13.5mm
무게 : 40g
규격: 31.7mm(1.25")
렌즈의 구조는 프뢰슬식 접안렌즈 앞에 필드렌즈를 덧댄 모습이고, 코팅은 H 50처럼 필드 렌즈 쪽은 코팅 처리가 되어 있지 않고 나머지 렌즈는 멀티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이 접안렌즈도 투과율은 90%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렌즈도 사양만 보면 준수합니다(역시 코팅은 제외). 이름에 걸맞게 오르소스코픽 방식으로는 시야가 매우 넓습니다. 선명도도 나쁘지 않아서, SWK 22mm에 비하면 주변부가 상당히 더 좋습니다. 고스트 상도 보이지 않구요. 그러나 이 렌즈 역시 아이릴리프가 아주 짧은 편인데요, 실측하면 4mm 정도입니다. SWK 22mm보다는 약간 길고, 안경을 쓰면 시야는 1/3 정도로 줄어듭니다(후드를 접으면 60% 정도로 넓어짐).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SWK 22mm보다는 그래도 훨씬 낫고, 배율도 여로모로 활용하기 좋은 적당한 배율로 나옵니다. 기본적인 초점거리가 짧기 때문에 아이릴리프가 짧은 것도 약간은 이해를 할 수 있죠.
4. 2.2배 확대렌즈
이 렌즈는 망원경의 초점거리를 늘여주는 확대렌즈입니다. 확대배율은 2.2배입니다.
렌즈 구성: 1군 2매
확대율: 2.2배
규격: 31.7mm(1.25")
이 렌즈는 접안렌즈와는 다르게 두 개의 렌즈 모두 코팅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두 렌즈 사이는 고무링을 이용해서 공간을 두고 있고요. 크기도 작고 매우 가볍습니다. 투과율은 95%는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광학성 성능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단점은 렌즈 지름이 11mm로 작은 편이라 큰 망원경에 쓰면 빛이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단순히 마찰력을 이용해 접안렌즈를 고정하는 방식이라 무거운 접안렌즈와 함께 쓰기가 부담스럽다는 점입니다.
3개의 접안렌즈와 1개의 확대렌즈에 대한 총평을 낸다면, 가벼운 무게를 절대적으로 우선하지 않는 한, 이 접안렌즈들은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게는 정말 가볍습니다(떨어뜨려서 렌즈가 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부피도 작아서 휴대성은 매우 뛰어나지요. 그러나 아주 짧은 아이릴리프와 평범한 광학성능, 떨어지는 렌즈 코팅을 고려했을 때, 그다지 추천할만한 렌즈는 아닙니다. 굳이 하나를 추천한다면, H 50mm 정도. H 50mm 렌즈는 저배율 렌즈로 편하게 쓰기에는 괜찮습니다. 보그에서 새로 생산할만한 접안렌즈로는 이것 하나 정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머지는 그냥 다른 회사의 제품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지금 시점에서 보그의 접안렌즈를 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