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망원경을 사고 싶은데, 어떤 망원경이 좋을까요?
이미 별을 보는 게 익숙하다면 망원경을 고르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겠지만, 밤하늘 관측에 취미를 붙이고 첫 망원경을 고를 때라면 꽤 망설여지는 문제입니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싸지긴 했지만, 천체 망원경은 여전히 비싼 물건이고, 첫 망원경에 대한 기대도 크기 때문에 어떻게 선택을 해야 흡족하게 쓸 수 있을지 많이 망설여집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망원경을 고르면 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망원경을 선택할 때, 기본적으로 정해야 할 부분은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비용), 어떤 것을 관측할 것인가(관측 대상), 어떤 형태로 이용할 것인가(휴대성, 사진 또는 안시)하는 문제입니다. 이것만 따져보면 어떤 망원경이 적합한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항목별로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할 것은 비용입니다. 비용을 얼마나 투자할지를 결정하면 선택의 범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산을 30~50만원으로 잡을 때는 80mm 굴절망원경 세트 또는 114mm 내외의 반사망원경 세트로 대강 결정이 되고, 이 가운데에서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되지만, 예산 범위를 모른다면 어떤 것을 고를지부터가 막연해집니다. 20만원짜리 60mm 굴절망원경을 추천할 수도 있고 500만원짜리 40cm 반사망원경을 추천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물론 예산 제약이 없어서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시작부터 그렇게 넉넉하게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지요. 망원경 방식 별로 가격을 비교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구경과 광학 정밀도, 기계적 마무리가 비슷할 때).
뉴턴식 반사 < 굴절식(아크로매틱) <= 카세그레인식 반사 = 슈미트-카세그레인식 <= 막스토프-카세그레인식 < 막스토프-뉴턴식 << 굴절식(아포크로매틱)
그 다음으로 따져볼 것은 관측 대상입니다. 하늘이 밝아서 관측 환경이 좋지않은 곳에 살고있고, 행성이나 달, 해를 보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경우와 평소에 어두운 곳으로 관측을 자주 나갈 수 있고 성운이나 은하, 성단 관측에 흥미가 있는 경우에 추천할 수 있는 망원경은 분명이 다릅니다. 전자라면 구경이 작아도 대비가 높고 선명하게 관측할 수 있는 ED 굴절망원경이나 막스토프 카세그레인을 추천하겠지만, 후자라면 예산 범위 내에가 가능한 한 구경이 큰 망원경을 추천하게 됩니다. 아마도 뉴턴식 반사망원경이 되겠지요.
망원경의 휴대성도 선택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요, 관측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살고 있고, 성운, 은하 등의 천체에 흥미가 있다면 아무래도 시외의 어두운 곳으로 관측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어떠한 이동수단을 쓰느냐에 따라 다른 망원경을 선택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없어서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해야하는 사람에게 무게가 20kg이 넘고 크기가 어른 키랑 비슷한 구경 25cm짜리 반사망원경을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휴대성이 우선이라면 소형~중형의 단초점 굴절망원경이나 중형의 카세그레인식, 슈미트-카세그레인식, 막스토프-카세그레인식 망원경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안시 관측이 우선인지, 사진 관측이 우선인지도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요, 사진 관측이 목적이라면 구경에 비하여 초점거리가 짧은(F수가 작은 망원경) 망원경이 아주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사진관측에는 단초점 굴절망원경, 단초점 반사망원경을 고르는 것이 좋죠. 안시 관측이 목적이라면 선택의 폭이 좀 더 넓어집니다.
그 외에도 유지관리의 편리성이나 견고함을 살펴보면 좋습니다. 반사식 망원경은 보통 1년에 1번 이상 광축 조절을 하는 것이 좋고, 거울 관리에도 좀 더 손이 갑니다. 이에 비해 굴절 망원경은 처음에 한 번만 광축을 잘 맞춰놓으면 특별히 손을 보지 않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망원경을 비교해가면서 어떤 선택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가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가정을 하고, 망원경 경통(OTA, Optical Tube Assembly)만 고르는 것으로 가정할게요. 예시는 미국의 어느 망원경 쇼핑몰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1) 예산을 150달러 미만으로 잡을 때
150달러 미만의 가격에서는 두 가지 제품이 나옵니다. 114mm 반사망원경과 80mm 굴절망원경이 나오는데요, 둘의 성능은 비슷하므로 비용과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됩니다. 둘 다 아무런 부속품이 없으므로 접안렌즈나 파인더 등은 따로 마련해야하는데, 80mm 망원경을 고른다면 남는 비용으로 보급형 접안렌즈를 하나 더 마련할 수 있지요.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114mm 반사망원경은 80mm 굴절망원경에 비해 실질적인 집광력이 더 높아서 더 어두운 별, 성단, 은하를 볼 수 있고, 행성을 볼 때도 더 밝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경과 부경 지지대 때문에 회절 특성이 나빠져 대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고요. 대략 90mm 아크로매틱 굴절망원경과 비슷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지요.
80mm 굴절망원경은 114mm 반사망원경에 비해 광학적 성능은 약간 못합니다. 단초점 아크로매틱 굴절망원경은 색수차도 제법 많이 생기므로 행성상이 크게 뛰어나지도 않지요. 그러나 휴대성은 훨씬 뛰어나고, 유지관리도 편리합니다. 관측 범위도 114mm 반사망원경보다 크게 좁은 것도 아니라서, 여행에 가볍게 휴대하면서 다니는 용도로는 훨씬 좋죠. 그리고 지상관측에도 반사망원경보다 유리해서, 지상관측과 겸해서 쓴다면 80mm 굴절 쪽이 좋습니다.
결국 150달러 미만에서 고른다면 어느 것을 선택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광학 성능은 큰 차이가 없죠. 다만 80mm 굴절망원경이 휴대성도 좋고 관리가 훨씬 편리합니다. 여러 용도로 쓰기에는 융통성도 더 좋은 편이고 가격도 조금 더 싸죠. 제가 둘 중에서 고른다면 별 고민 없이 80mm 굴절망원경을 고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더 어두운 천체를 봐야겠다면, 114mm 반사망원경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요.
2) 300달러 정도의 예산이라면...
예산을 300달러까지 높이면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망원경을 고를 수 있습니다. 망원경의 성능도 전반적으로 좋아지지요. 이번에 올라온 후보는 접안렌즈와 파인더, 정립프리즘이 포함된 102mm 막스토프 카세그레인 망원경 세트, 경통만 있는 120mm 굴정망원경과 203mm 반사망원경입니다.
망원경 별로 살펴보겠습니다 .
먼저 102mm 막스토프 카세그레인 망원경 세트는 가격이 가장 쌉니다. 부속품까지 이미 포함되어 있죠. 구경이 작긴 하지만, 남는 비용으로 여러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죠. 광학성능은 80~90mm의 아포크로매틱 굴절망원경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집광력이나 상의 선명도에서). 어두운 성운이나 은하를 관측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불리하지만, 행성, 달 관측에는 괜찮은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휴대성은 나머지 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고 관리도 굴절망원경과 비슷한 정도로 편리합니다. 구경이 작다는 것만 빼면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죠.
120mm 굴절망원경은 가장 비싸지만 꽤 매력적입니다. 아크로매틱 망원경으로 색수차가 비교적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행성관측에도 쓸만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고, 실질 집광력은 150mm급 반사망원경과 비슷해서 성운, 성단 관측에도 크게 부족하지 않습니다(102mm 막스토프 망원경의 2배 정도). 넓은 시야로 커다란 성운을 보기에는 가장 좋지요. F5.0의 단초점 망원경으로 사진 촬영에도 좋지요. 그렇지만, 102mm 망원경보다 크고 무거워서 휴대성은 떨어지는 편이고(자동차 없이 휴대할 수 있는 한계), 접안렌즈와 같은 부속품을 구입해야해서 추가비용이 들어갑니다.
203mm 반사망원경은 구경이 가장 큽니다. 휴대성은 제일 못하지만, 광학 성능은 가장 좋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운, 성단, 은하처럼 어둡고 희미한 천체 관측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이 망원경을 선택하면 됩니다. 나머지 두 망원경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죠. 부경으로 인해 회절 특성이 나빠지는 것도 커다란 구경으로 모두 상쇄시킬 수 있으므로, 행성 관측에도 괜찮은 성능을 기대할 수 있고요(보통 정도로만 만들어도 90~100mm 아포크로매틱 망원경 정도의 행성상을 기대할 수 있음). 다만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이 어렵고, 관리가 셋 중 가장 까다롭다는 단점은 있지요.
만약 휴대성이 우선이고, 행성 관측에 만족한다면 102mm 막스토프-카세그레인 망원경이 가장 좋습니다. 길이가 30cm가 채 안되고, 무게도 3kg 미만으로 간편하게 휴대를 하기에는 굉장히 좋습니다. 튼튼한 사진용 삼각대만 있으면, 어디든 들고다니며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가 있고, 어두운 천체 관측이 목적이라면 203mm 반사망원경이 가장 좋습니다. 구경비가 작아서 사진 촬영에도 괜찮죠.
120mm 굴절망원경이 가장 애매해지는데, 관리가 편리하므로 학교나 민간 천문대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라면 추천할만 합니다.
3) 500달러까지도 쓸 수 있다면..
이 가격에서는 망원경의 개성이 훨씬 뚜렷해집니다. 127mm 막스토프 망원경과 254mm 반사망원경, 80mm 아포크로매틱 굴절망원경이 후보로 등장하는데요, 이 셋은 각자 개성이 너무도 뚜렷하므로, 고르기가 오히려 쉬워집니다.
먼저 127mm 막스토프 망원경은 광학 성능은 100mm 아포크로매틱 굴정망원경과 비슷합니다. 길이 40cm, 무게 4kg 정도로 휴대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른 두 망원경과는 다르게 몇 가지 기본 부속품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100달러나 싸다는 것도 장점이 되지요. 적당한 성능에 뛰어난 휴대성이 필요하다면 이 망원경이 좋지요. 단 천제 사진이 목적이라면 다른 망원경을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행성, 달 촬영으로는 좋음).
254mm 반사망원경은 셋 가운데 광학 성능은 제일 좋습니다. 압도적으로 큰 구경에서 뿜어내는 성능은 다른 두 망원경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러나 이 망원경을 고른다면 휴대는 포기해야 합니다. 승용차에 싣기에도 버거운 크기이므로,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에 들고가는 건 사실상 곤란해지죠.
80mm 아포크로매틱 망원경은 휴대성이 가장 좋고, 사진 촬영이 목적이라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됩니다. 그렇지만 다른 두 망원경에 비해 망원경으로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휴대성이 우선인 고급 망원경이 필요하다면 괜찮지만, 구경이 작으므로 포기할 것도 많아집니다.
휴대성이 우선이라면 127mm 막스토프 망원경이, 어두운 천체 관측이 중요하다면 254mm 반사망원경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80mm 아포크로매틱 굴절망원경은 휴대성이 좋아야하고, 구경 대비 뛰어난 성능이 필요하며, 사진 촬영에도 쓰겠다는 생각이 들 때 선택하면 됩니다.
사실 첫 망원경이라면 망원경에 쓸 삼각대를 함께 구해야하므로, 따져볼 게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비용(예산)과 활용 방법을 확실히 정하면 망원경 선택이 훨씬 쉬워집니다. 망원경을 선택하는 데 혼란을 느낀다면, 우선 얼마를 쓰고, 무엇을 볼 것인지부터 확실히 결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