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문 기록을 살펴보면 각도를 표시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천체의 위치를 나타낼 때 쓰는 방법으로, 현재와 같이 각도의 단위를 이용하여, 위치를 표시합니다. 천체의 적위를 거극도, 적경은 입수도를 이용해서 표현하고, 각도의 기본 단위는 도(度)인데, 1도의 크기는 한 바퀴(360도)를 구법천문학에서는 365.25도로(1태양년의 길이와 관련된 값입니다), 서양의 영향을 받은 신법천문학에서는 360도로 나눈 것입니다.
즉 구법천문학에서 1도는 현대의 단위로 환산하면 0.98563도에 해당합니다.
다른 방법은 좀 더 미묘합니다. 위치를 나타낼 때처럼, 각도로 나타낸 것이지만, 혜성의 꼬리 길이처럼, 각의 크기를 나타낼 때에는 각도의 단위인 '도' 대신 '장(丈)', '척(尺)', '촌'(寸)과 같은 길이의 단위로 표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 현종 5년 11월 4일(음력)의 성변측후단자에는 혜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혜성은) 익수 안 3도를 조금 넘은 곳에 있었고, 북극과의 거리는 111도였다. 꼬리의 길이는 2장여 정도이고 폭은 8~9촌 정도 되었는데, 장수 가운데로 바로 뻗었다. 성체는 낭성만큼 밝았고, 색깔은 황백색이었다.*
(*번역은 기상청에서 펴낸 『관상감이 기록한 17세기 밤하늘』의 것을 따랐으나, 위치 표시에 관한 번역-주황색 글씨-은 부정확한 번역입니다. 원문은 '翼宿內三度强 去極一百十一度'인데, 이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익수 3과 1/12도, 거극도 111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상청의 번역에서는 '거극'을 풀어 썼으나 현대의 적위에 해당하는 옛 천문학 용어의 하나로 보는 것이 더 낫고, '강'(强)은 소수를 나타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1/12을 뜻합니다.)
혜성의 위치는 각도로 분명하게 표시를 하고 있지만, 꼬리의 길이는 길이 단위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연구를 위해서는 현대의 각도 단위로 환산해 주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조선을 비롯한 과거의 천문학자들은 왜 이렇게 일관성이 떨어지는 표기법을 쓴 것일까요? 관측 기록의 내용으로 보아, 각도에 대한 관념이 모자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천체의 크기를 나타낼 때에도 각도의 나타내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길이 단위의 형태로 표기를 했지만, 장, 척과 같은 단위 또한 각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옛 방법을 존중하는 당시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관습적으로 이렇게 표기한 것 같은데요, 같은 각도라도 위치는 '도'라는 단위로, 길이와 같은 크기는 길이 단위의 형태를 빌려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한서(漢書)』 가운데 「율력지(律曆志)」에는 다음 내용이 있습니다.
度者,分、寸、尺、丈、引也,所以度長短也。(전한서)
故體有長短,檢以度 (후한서)
도(度)는 분(分), 촌(寸), 척(尺), 장(丈), 인(引)인데, 도(度)를 이용해 (길이의) 길고 짧음을 나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길이는 '도'로 나타내는데, 이 전통이 후대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1인은 10장, 1장은 10척, 1척은 10촌, 1촌은 10분에 해당합니다. 10진법 단위로 늘어나는 단위이지요(역시 「율력지」에 나옵니다). 그러면 척이나 장은 각도로 나타내면 어느 정도에 해당할까요? 옛 기록을 보면 1척은 1~2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척이 어떤 각도와 대응되는지는 중국의 옛 수학책인 『주비산경(周髀算經)』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비산경은 동양의 수학에서는 교과서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책으로, 천문학과 수학에서 기본으로 참고하는 책이었습니다.
倍正南方,以正勾定之。即平地徑二十一步,周六十三步。令其平矩以水正,則位徑一百二十一尺七寸五分。因而三之,為三百六十五尺、四分尺之一,以應周天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
이 책에서 당시의 우주 모델에 관해 길게 설명하다, 척과 도의 대응이 설명되어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바로 빨간색으로 강조해 놓은 부분인데요, 365.25척이 365.25도에 대응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1척은 각도로 1도입니다(물론 현대의 1도가 아니라 고대의 1도입니다. 현대의 단위로 하면 0.986도인데, 현대의 1도와 거의 차이는 없습니다).
이에 따르면 1장은 10도, 1척은 1도, 1촌은 0.1도, 1분은 0.01도에 해당합니다. 이에 의거하여 앞에서 소개한 혜성의 기록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혜성은) 적경 10.93도, 적위 -21도였다. 꼬리의 길이는 약 20도이고 폭은 8~9도 정도 되었는데, 장수(현대 별자리로 큰물뱀자리 λ, μ, υ별 부근) 가운데로 바로 뻗었다. 성체는 낭성(시리우스, -1.5등급)만큼 밝았고, 색깔은 황백색이었다.**
(** 혜성의 좌표는 안상현, 최윤희, 김성수의 「조선 현종5년 1665년 대혜성의 궤도 요소 결정」의 값을 따랐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이 혜성은 -2~-1등급에 이르는 밝기를 보여주었고, 황백색의 먼지꼬리가 크게 발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과 함께 실려있는 도판과도 거의 일치하는 기록이지요. 아마도 1997년 봄에 볼 수 있었던 헤일-밥(Hale-Bopp) 혜성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크고 밝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요.
앞으로 조선시대에 관측된 혜성의 기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쓸 예정인데, 과거의 천문기록에 나타난 각도 단위의 변환은 주비산경의 법에 따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