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6월 11일 밤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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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고 대략 일 주일, 예상대로 남경필은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주당과의 연정을 제안하고,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자신은 합리적인 인사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지사라는 직을 발판삼아 차기 대권주자로 거듭나려는 준비를 착실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박근혜를 활용했지만, 이미 박근혜의 정치적 생명이 쇠하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 챘을 겁니다. 이전의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는 새누리당의 지지를 가져가면서도 중도적 이미지를 통해 상대 정파의 표를 끌어오는 전략을 쓰게 될 것이고, 이 계획은 그의 상당히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새누리당 내의 경쟁세력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관건이겠죠.
원희룡과 남경필은 새누리당에서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좀 달랐습니다. 원희룡은 소장개혁파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손실이나 부담은 회피하는 식으로 행동해온 반면, 남경필은 자신의 정치적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단은 강자에게 굽히는 식의 선택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 기회가 오면 하려던 말을 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었죠. 결과적으로 남경필은 원희룡에 비해 소신이 약하다는 느낌을 줬지만, 대중에게 개혁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주류에서도 소외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교활하단 이미지가 있지만, 기억이 오래가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특성을 볼 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리한 선택이죠(옳은 선택이란 뜻은 아닙니다). 이미지를 약간 나쁘게 가져갈 순 있지만, 대중의 기대치를 줄여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줄이면서도 당의 다른 인사에 비해서는 낫다는 인상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정치적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정치적 감각이 원희룡 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겠지요. 원희룡은 개혁적이고 여당인사로는 합리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당론에 끌려가거나, 자신의 손해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주장을 굽히고 당에 끌려가는 선택-동시에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왔다는 점에서 정치적 약점이 더 많습니다. 제주4.3항쟁 관련법에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예가 되겠죠. 아마 원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화려한 이력과 그로 인한 자존심이 바탕에 깔려있을 것입니다. 이 자존심이 그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결국 정치적 성장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희룡은 자신의 의식 속에 가진 것이 많고, 아직 자신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여권의 다른 인물을 살펴보면, 김문수는 앞으로는 잘 해야 국회의원 자리를 보전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그는 새누리당과 각을 세우면서 당의 주류에도 끼지 못했고, 경기도지사를 하면서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는 몇 가지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했고요. 경기도지사가 정치적 인생의 최대치로 남을 거라고 봅니다. 홍준표 역시 지역의 정치적 기반을 어느 정도 다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겁니다. 그의 정치는 이미 과거형입니다. 김무성은 당권을 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정치적으로 노련하고, 자신의 영역을 꽤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만 역시 구태정치의 이미지가 강하고, 도덕성에 흠결이 매우 많습니다. 아마 이 문제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을 거고, 본인도 강한 2인자에 만족하겠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새누리당 내에서 권력의 중심이 소장파로 옮겨가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들은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는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