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종교
2009.08.12 04:08

종교에 관한 이야기 3(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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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교를 찾는 까닭 (2009. 4. 29.)
종교는 참 마음의 약점을 잘 파고드는 것 같구나.
믿을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는 엉터리인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불길한 이야기를 한다면 괜히 불안해지고, 시험 치는 날에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는 식의 미신을 따르기도 하는 것처럼, 신이 있고 그를 믿고 따르면 은총을 내려 복된 삶을 준다고 하는데, 사람의 미혹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종교를 왜 믿는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러해.
있으니까 믿는다고. 종교가 이미 있으니 믿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냥 일종의 사회화 과정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만약에 주위에 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면,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이렇게 퍼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기껏해야 마을의 무당이나 주변의 높은 산에 있을(또는 있다고 믿는) 정령을 믿는 정도였을 거야. 신성한 우물을 숭배할 수도 있겠지.

종교가 국가 같은 거대한 권력체와 결합하고 종교가 스스로 거대한 교단을 갖추어 제도화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어떤 소규모 공동체가 섬기는 신성한 사물이나 장소에 제를 올리는 정도였을 거야. 평소에는 종교랑 상관없이 잘 지내다가 병이 든다든가 마을에 흉한 일이 잦아진다든가 하는, 원인이나 해결 방법이 분명치 않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가는 정도로. 예전에 시골 마을에서 서낭당에 제를 지내거나, 새벽에 깨끗한 물을 떠 놓고 치성을 드리는 것처럼.

그런데 서양에서처럼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제도화된 경우(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불교)에는 종교를 믿는 것 자체가 그 사회의 구성원이 거쳐야할 당연한 사회화 과정에 포함되는 것처럼 보여. 우리가 사회 제도를 익히고 그에 맞추어 사는 것처럼,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요구와는 큰 관련이 없이 종교를 믿는 것이 요구된다고 봐. 무의식적인 학습 과정의 하나로. 개인에게 믿음을 굳이 강요하지 않더라도(실제로는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믿게 되는 것이라 생각해. 신을 믿는다는 행위가 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모두 그것이 진리라고 하니까 진리라고 알고 믿는 것>이지. 마침 그 믿음이 고달픈 현실에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네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책임감을 좀 덜어주기도 하고, 종교 공동체가 때로는 사회적인 바람막이 되어 주기도 해서 여러모로 편하니까.

전후에 한국에서 기독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진 데에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 확실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전통 문화의 단절(식민지 경험) + 서양 문물에 대한 선망 +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대규모 물자 원조 등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 이 부분은 자료를 좀 찾아봐야할 것 같아.

*훈련소 이야기..
군대에 갓 들어와서 느끼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전도에 이용하다니..
나도 종교 참석(희한하게도 종교 행사에 참여할 권리는 있는데 빠질 권리는 없더구나. 군에서는 목회자도 장교이기 때문일까?) 때 성당, 교회, 불당에 다 가봤는데, 어느 곳이든 휴식 시간이라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긴 하더구나. 노래를 듣는다거나 신문을 본다거나 약간의 간식을 얻는 것은 덤이었고..  


#11. 종교를 찾는 까닭-원초적인 욕구 (2009. 4. 30.)
도구 이론을 종교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보통 도구를 쓰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이득이 생기기 때문인데, 종교를 믿는 것은 그렇지 않잖아. 오히려 공물을 내야하고 예배를 올리느라 시간도 빼앗기고 여러 가지 번잡한 규칙도 생기고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고. 약간의 위안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만 빼면 믿음이 그렇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는 않구나.

종교나 신이라는 망상에 빠지는 까닭은, 내 생각에는 이런 것 같아.
자연은 항상 살아남고자 행동하는 사람을 선택해 왔잖아.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강력한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고. 종교도 사람이 가지는 이러한 속성의 한 양태인 것 같아.

사람이 생존을 위해 키워온 능력 가운데 하나가 외부의 존재를 인지하고 판단토록 하는 작용일 텐데, 여기에 사고 작용이 더해지면서 종교가 생길 바탕이 마련된 것 같아. 무언가를 '있다'-'없다'는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단순히 현재의 시점에서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된다'-'지각되지 않는다'로만 판단하지는 않잖아. 비록 지금은 감지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정황 증거를 통해 '무언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것처럼.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도 이러한 인식 특성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자연에 대한 무지와 무력함 속에서, 무언가 설명하지 못할 일을 보고 겪으면서, 이런 저런 추측을 하다가, 어떤 가상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일어난 현상을 보면 그 가상의 존재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러면 드는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가상의 존재에 뭔가 잘 보이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겠지.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센 놈'을 섬기고 나서부터는 뭔가 일이 잘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진짜 있나보다 하겠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인데도) '그 놈'이 도와줘서 그런 것 같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놈'에게 뭔가 섭섭하게 한 일이 있나 하는 의심이 들고. 그 과정에서 제의를 만들어 갔겠지. 우리도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내어 놓을 터이니 좀 잘 보살펴 달라고. 나중에는 삶도, 죽음도 거기에 갖다 붙이고. 죽은 뒤도 불안하니까.

물론 그 과정에 환각이라든가 다른 설명하기 어려운 심리적 현상들이 많이 개입되어 있을 거야. 그 경험들은 신이나 어떤 초자연적 존재가 실제로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쓰였겠지(환각이나 정신병은 인격신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야. 어떤 똑똑하고 힘 있는 존재가 조종하고 있다고 느꼈겠지). 큰 바위를 섬기고 큰 나무를 섬기고 큰 동물을 섬기는 것도 모두 비슷한 정서일 거라 생각해. 사람을 압도하는 시각적, 청각적 위압감에 그 것들이 무언가 굉장한 능력을 지닌 것처럼 느끼게 되잖아.

배타적인 유일신 사상은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생겼을 거야. '센 놈'이 있으면 '더 센 놈'이 있고 그렇게 따져들다 보면 '제일 센 놈'이 있겠지. 그 놈이 유일신이 되는 것이고. 유일신 체계는 후에 신정 국가가 들어서고 제국 질서와 결합하면서 강화되었을 거야.

성경(구약)에 보면, 출애굽기에, 모세가 이집트의 신관(책에는 술객으로 나와 있음) 마법 대결을 해서 모세가 이기는 장면이 나와. 간단히 말하면 유대가 섬기는 신이 이집트에서 섬기는 신보다 더 센 놈이니, 유대 족속은 모세를 따르고 이집트는 유대 족속의 길을 막지 말라는 것이거든. 만약에 야훼가 졌다면 유대인들이 모세를 따라 나왔을까? "꿈 깨라" 그랬겠지.

요즘은 종교에 심오하고 복잡한 사상이 씌워져 있는데, 이것이 종교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철학도들이 공부를 할 때 가장 주의해야할 것 가운데 하나가 '언어의 바다'에 매몰되는 것이거든. 철학자들이 펼치는 말장난에 말려들지 않도록. 자칫 잘못 빠져들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무언가 심오한 지식을 얻은 듯 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까(유명한 철학자 헤겔은 자기 생각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든 나머지 절대 정신의 승리를 이야기하면서 "나폴레옹 만세"를 외쳤어. 절대 정신이 지구를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해 책을 쓰기도 했고. 중력이 생기는 원인이나 지구 공전 원리를 절대 정신에서 찾겠다고. 나름 근거는 있지만 요금 관점에서 보면 창조론이나 마찬가지인 이론들이야).

내 생각에는 종교도 삶의 확장이라든가 삶의 목적 같은 어렵고 고차원적인 사고 작용보다는 소박하고 직접적이고 단순한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생각해. 삶의 의미를 논할 것도 없이, 먹고 싸고 자고 하는 문제 말이야. 복잡한 사유는 나중에 덧입혀졌겠지.


#12. 종교를 찾는 까닭-세번째 꼭지 (2009. 5. 2.)
요즘의 종교가 오래 전의 종교와 차이가 크다는 데는 동의해.
지금은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더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명료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거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든가, 삶의 지향점을 종교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고.

그 사람들에게는 신이 있다 없다하는 논리적인 논쟁보다는 종교의 가르침이 삶의 방향을 분명하게 가리켜준다는 점이 중요할 거야. 신의 존재는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가르침의 최종 근거로서 중요하고 믿음이 그 존재의 실존을 담보하겠지.

영생을 주기 때문에, 혹은 나중에 천국에 가려고, 또는 마귀의 손아귀에 넘어가지 않도록 종교를 믿는 경우라면(또는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종교-국내에서는 이러한 예가 많잖아. 불교, 기독교를 막론하고),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믿는 종교와 근본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 그러한 대가를 바라고 믿는 것이라면 더 나은 대가를 보장해주는 종교가 생길 경우에 바로 믿음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기존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기존 종교 공동체와의 유대 관계를 중시하거나, 지금의 기독교보다 훨씬 좋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거나, 소수가 믿는 종교라서 그 신빙성이 의심되는 경우라면 개종을 망설이게 되겠지).

"사람들이 왜 종교를 갖는가"의 문제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무신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신에 열광하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도킨스도 '만들어진 신'에서 신이 없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논증을 한 다음에 종교의 기원,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살펴보잖아.

유신론자가 이 논의에 참여했으면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롭긴 했겠지만, 그 유신론자는 외롭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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