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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39권, 10년(1734 갑인 / 청 옹정(雍正) 12년) 11월 19일(경인) 1번째기사
우리 나라의 역법과 청나라의 것이 차이가 나는 문제를 의논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備局堂上)을 인견하였다. 이보다 앞서 조정에서는 역관(曆官)을 청(淸)나라에 보내어 역서(曆書)를 만드는 신법(新法)을 알아 오도록 하였는데, 미처 돌아오기 전에 청력(淸曆)이 이미 반포(頒布)되어 왔으니, 명년에는 윤4월을 두었다. 대저 역법(曆法)은 중기(中氣)가 없는 달에 윤월(閏月)을 두는데, 척력에는 소만(小滿)의 중기가 4월 29일 밤 자시초(子時初) 2각(刻) 11분(分)에 있으므로 그 다음달에 중기가 없어 윤월이 되지만, 우리 나라는 분야(分野)와 절후(節候)가 조금 다르므로 소만의 중기가 29일 야분(夜分) 후 자정(子正) 1각 8분에 있어 문득 다음달 초 1일에 속하니, 신법으로써 미루어 본다면 청나라의 4월은 당연히 우리 나라의 윤3월이 되겠으나, 《역상고성(曆象考成)》의 옛법으로서 미루어 본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또한 윤4월을 두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청력을 따른다면 절후가 어긋나게 되고, 따르지 않는다면 저들과 문서를 왕복할 적에 불편함이 있으므로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신사철(申思喆)이 품지(稟旨)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여러 신하에게 순문(詢問)하니, 우의정 김흥경(金興慶)이 말하기를,

“옛법을 따라 윤4월을 두어 청력과 같이 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여러 신하들 또한 모두 김흥경의 말과 같았는데, 유독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태좌(李台佐)는 말하기를,

“윤3월을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으나, 임금이 마침내 김흥경의 말을 따랐다.

http://ocean.kisti.re.kr/IS_mvpopo210L.do?method=list&poid=kosss&kojic=OJO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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