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경의 편집과 자연과학과의 공존 가능성 (2009. 4. 9.)
그렇지? 어제 교리를 바꾸고 정경을 고친다는 글을 써 놓긴 했지만,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긴 했거든. 정경의 정립은 교단 형성 중에나 가능한 것이지, 이미 교단과 교리의 성립이 끝난 시점에서는 좀 무리가 많겠지.
그래도 고고학적 발굴에 따라 약간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작업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4~5세기경에 기독교 정경을 확립하면서 그 기초로 쓴 문헌이 구약성서의 경우에는 히브리어 원본이 아니라 희랍어 번역본인데, 이
번역 가운에 오역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부분들이 있거든. 이런 오역을 바로잡는 정도는 가능하다고 봐. 물론 관련 교리 해석은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신약의 경우에는 애초에 희랍어로 쓴 것이니 이런 문제는 없지만,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되는 과정이나 사라진
문서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 그리고 정경화 작업 가운데 의도적으로 왜곡한 부분이나 편집된 부분이 있어).
고고학의 성과를 성경 연구에 참고하는 정도의 일은 신학계에서도 널리 이루어지고 있고, 교리를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신학자들도 이야기하는 수준에 이르렀거든. 세계의 유일신을 절대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기독교가 독단적인 교리를 고집 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아.
종교와 과학의 타협이라, 내 생각은 이러해.
기독교에서 신이 세계를 만들었다고 선언해도 좋아. 그리고 창조론을 사실이라 믿어도 상관없어. 다만 창조론이 과학적 학설이라고
주장하지만 않으면 돼. 과학 연구에서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 연구를 방해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봐. 예를 들어
교과서에 창조론이 과학 이론인양 적는다거나 하는 요구를 하지는 않는 거야(미국 일부 주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과학 교과서에서
창조론을 가르쳤나봐). 그러니까 종교적 지식은 종교적 지식으로 두고, 과학 지식은 과학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이렇게만 해주어도 기독교가 과학과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론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것도 불쾌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잃을 것도 없잖아. (질 것이 명백한) 자연과학과의 논쟁도 피할 수 있고.
*신학교에서는 성경 성립에 관한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친다고 해. 즉 성경근본주의같은 해석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은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신학도 라면 알고 있어. 문제는 그 지식이 일반 신도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7. 종교적 관용과 천동설 (2009. 4. 10.)
1. 종교인 입장을 고려하니까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일반 신도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겠지.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 '성서에는 오류가 없다'이기도 하지만.
가톨릭교 계열에 한정한다면, 절대적인 것은 신과 성경이 뿐이야. 그나마 성경은 성서해석학이 발달하면서 인간 역사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해. 교리는 기본적으로 성경에 대한 해석이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화의 여지가 있어.
종교인들도 믿음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좀 찾아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지금은 삼위일체 같은 교리가 어떤 커다란 권위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성경에 관한 여러 의견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교리의 절대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신이 그 교리를 선택하도록 했다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어).
2. 현대 과학을 인정한다면 처녀 잉태나 오병이어 같은 기적들을 역사적 사실로 주장할 수는 없어. 이 부분은 종교계에서 양보를
해야 한다고 봐. 즉 그 기적들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의 영역에 국한시켜야한다고 생각해. 스스로 이율배반이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서로 병치시키지 않는다면 달리 방법이 없어(지금은 중세가 아니잖니). 어느 한쪽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 외에는. 옆집에 사는 사람이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하는 것 아니겠니.
아니면 이사를 가든가. 믿음도 중요하지만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도 중요해. 관용이 교리해석과 반드시 결합할 필요는 없다고 봐.
3. 천동설과 기적은 큰 차이가 있어. 기적은 성경에 적혀있지만, 천동설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거든(천동설이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리에 포함이 된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천체의 운행에 관해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은 기껏해야 어느 전쟁에서 위기에
처했는데 신의 도움으로 해가 몇 시간 늦게 져서 유대족속이 이겼다는 식의 내용이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식의 내용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수용할 수 있었을 거야. 교회에서 천동설을 지지한 것은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지구가 그
중심에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추측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마침 천동설이 기독교 세력의 교리에 잘 들어맞아서 선택을 했지. 그리스
시대에도 지동설 비슷한 주장은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에서 천동설을 뒤집을 만큼 튼튼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 당시에는 천동설이
주류 학설이었는데, 기독교 쪽에서 그 학설을 보니까 기독교의 믿음과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서 채택을 했어. 그 후에는 우주의
형태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인 모델은 천동설이라는 입장을 정했고(당시에는 교회에서 1+1=3이라고 하면 그렇게 믿어야하는
시대였으니). 그런데 갈릴레오 같은 사람이 천동설이 틀린 것 같다고 주장하니까 기독교 입장에서는 자기가 지지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소리라 일단 기분이 나쁘고(괘씸하게도 허락도 없이 성직자의 의견과 다른 이야기를 했으므로), 두 번째로 자기들의 말은 신의
뜻이라고 주위에 큰소리를 쳐놓았는데, 신의 뜻을 받아 지지한 학설이 엉터리라니까 그 권위가 무너질까 두렵고 해서 일단 억압은
했지. 그런데 나중에 따져보니 천동설이 틀린 것은 분명해 보이고 성경을 봐도 교리 해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성경에는 지구는
멈춰있다거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거나 하는 내용이 없으니)도 아니고 하니 은근슬쩍 꼬리를 내린 것이지). 기존의 성직자들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고 잘못을 시인하는데 400년이나 끌긴 했지만 성경으로만 보면 당장 틀렸다고 인정해도 되는 문제였어.
* 나는 철학과 신학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봐. 철학은 신도 까발려 보자고하는 반면 신학은 신은 일단 있다고 치자는 정도의
차이이지(좀 결정적인 차이이긴 하지만), 그 연구 방법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거든. 즉 신학도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뜻을
해석해보자는 학문이지, 무조건 믿고 보자는 식의 학문은 아니라서, 믿음과 이성 사이에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벽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시도하거든.
#8. 불교와 종교의 미래 (2009. 4. 11.)
불교는 참 경이로운 종교라 생각해. 아무런 절대자 없이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개인의 실천만으로도 이토록 거대한 종교가 되었으니. 싯다르타는 아무런 절대자나 절대적인 권위를 말하지
않았어, 그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을 스승 정도로 간주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훌륭한 스승으로 그를 받들었어.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로 종교를 정의한다면, 불교는 종교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불교에는 가르침이 있을 뿐인데 그
가르침마저 절대적인 가르침은 아니니까(북방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짜개고 나왔니 하면서 석가의 출생을 신화화하고
미륵불처럼 신격화된 부처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입장은 불교 전체에서 볼 때에는 부분에 지나지 않고 초기불교의 교설과는
상반된다고 할 수도 있는 해석이야. 그런데 이런 해석도 불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존할 수 있어. 불교의 포용력은 절대자를 가지는
종교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넓어. 불교계에서는 ‘부처님 손에 재를 털어라’ 같은 말도 하잖아. 불교에서는 이 말을
깨달음을 설명하는 우화 정도로 여기지만, 이 말에서 '부처'를 '예수'나 '마리아'로 바꾼다면, 기독교계에서는 신성모독으로
간주하고 단죄하려 들 거야).
다시 신 이야기로 돌아가면..
일반 신도뿐만 아니라 신학자들도 믿음을 양보하지는 않아. 신학에서 믿음을 양보하는 순간, 종교는 과거의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릴 테니까. 현대 과학이 좀 떨떠름하지만, 거기에 도저히 맞설 수는 없으니 종교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과학을
인정하는 것이지. 과학계에서도 종교계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으니 상대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그 타협을 받아들이는 정도이고.
이건 추측에 불과하지만, 과학 사회가 미래에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그리고 그 사회의 방향이 민주적 질서를 확산시키고 개방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자를 섬기는 종교는 점차 그 자취를 감출 것 같아.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명확한 방향성을
가릴 수 없는 분야에서 종교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종교를 대체할 다른 사유 체계가 새롭게 만들어진다면(그
사상이 충분히 흥미롭고 유용하다면) 종교는 과거의 전통이나 현재의 사교 장소 제공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하게 될 것 같아.
언젠가는 박물관이나 옛날이야기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겠지. 우리가 지금 그리스나 이집트의 신을 이야기 하듯이(그 때가 되어도
현실에서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진 절대자를 찾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2000년 전과 닮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어. 신을 믿는 종교는 여럿 있지만, 종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를 하면서 과학 사상과도 별다른 충돌을 보이지 않는 사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네.
#9. 불교와 다종교 사회 (2009. 4. 12.)
불교를 유교와 같은 급으로 봐도 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해. 불교 쪽의 논의를 보고 있으면 철학과 거의 구분을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예의를 표하고 석가의 언행을 중시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와는 별 상관이 없는 가르침 역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거든. 토속 신앙과 결합하면서 기복신앙처럼 변질되긴 했지만(이건 불교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불교에서도 일반 신도들과
성직자들 사이에 입장의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일반인을 위한 불교 강좌 같은 것도 열어서 단순한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은 하더구나. 스님들이 일반인들에게 들려주는 답도 '무엇을 믿으면 해결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겠냐'
정도이고.
유일신이 장악하기 전의 세상..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석가탄신일고 기념하고 기독탄신일도 기념하고 점집에선 굿을 하고. 한국은 아직 유일신이 장악한 사회가 아니니까.